[출판N] 사회적 콘텐츠가 된 “서울와우북페스티벌”과 문화기획자 故 이채관

2021. 07

출처 |출판N : http://nzine.kpipa.or.kr/detail/XRBBBWTmZAbi5MKuY


책 축제의 시작은 그랬다. 회사 사무실 한편에서 이채관 대표와 직원 두세 명이 모여 기획회의를 하고 있었다. 홍대 앞에서 축제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 우연히 나온 아이디어가 책이었다. 그는 직관적으로 ‘아! 되겠다’ 하고 생각했다.

홍대 앞에는 공연장, 클럽, 출판사, 갤러리를 비롯하여 당시로는 실험적인 공간인 대안공간까지 있었다. 편집자, 일러스트레이터, 예술가, 뮤지션, 기획자 등의 인적 자원 또한 홍대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홍대 앞에는 문화적 자산, 문화적 공간, 문화적 사람, 실험적 문화를 수용하려는 태도까지 모두 존재했다. ‘홍대 앞’이라는 공간이 엮어낸 지역정체성이 책 축제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전에 없던 축제를 기획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2년에 걸쳐 마포구청, 한국출판인회의, 문화체육관광부, 일반 기업 등을 찾아다니고 설득한 끝에 첫 축제를 열 수 있었다. 2005년 9월 30일부터 나흘간 ‘거리로 나온 책, 함께 읽는 책, 우리가 쓰는 책’이라는 주제로 제1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열렸다. 60여 곳의 출판사가 참여한 축제는 10만 명이 다녀갈 만큼 큰 호응을 얻었고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여러 언론에 소개되었다.

1회에 이어 2회까지 많은 기관과 사람들이 함께 일을 했지만, 지원금을 마련하고 출판사 참여를 독려하는 등 가장 도움이 컸던 곳은 한국출판인회의였다. 제3회부터 서울와우북페스티벌조직위원회는 사단법인의 형태를 갖춰 독자적인 책 축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위태로웠다. 조직에 상근 인력을 꾸준히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무렵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되어 국가에서 사회적 기여도가 있는 사업과 관련한 회사나 단체를 만들면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하여 다양한 지원을 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이는 책을 통해 일상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지향한다는 우리 목적에 부합했기에 사회적 기업에 신청했고, 2010년 서울형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었다. 명칭은 사단법인 와우책문화예술센터로 바꿔, 축제를 넘어 일상의 예술화·축제화를 모색하는 조직으로 거듭나려는 지향을 담아내려 했다. 조직의 전문적인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2012년에는 사회적 기업과 전문예술법인으로 각각 선정되어 책‧문화‧예술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는 기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준비하며 먼저 하는 일은 슬로건을 정하는 일이었다. 이채관 대표는 문화기획에 있어 문제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벤트성 행사로 그치지 않기 위해 문제의식을 담아 축제의 방향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잡았다면, 해가 갈수록 그해의 이슈나 사회‧문화적 의제를 반영해 왔다. 매년 슬로건이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일부 외부 자문을 받기도 하지만 주로 직원들 간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 만들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전국의 북페스티벌로 번져갔다. 서울북페스티벌(현 서울지식이음축제), 파주북소리, 군포북페스티벌 등 전국 지역에 100여 개가 넘을 만큼 많은 축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채관 대표는 다른 지역에서 책 축제 의뢰가 오면 축제를 대행하지 않고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모든 기획과 자료와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책 축제가 곳곳에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로 인해 홍대 주변에서 마포구 그리고 서울, 나아가 전국의 문화지형까지 바뀌었다.

이채관 대표는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작업인 문화기획이 ‘지역’이라는 구체적 맥락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는 문화기획의 시작점을 지역자원을 살피는 일로 생각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장소의 살핌을 통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축제 모델이었다. ‘홍대 앞’이라는 지역자원, ‘지역정체성’에 기반한 새로운 모델로서의 ‘책 축제’를 만든 것이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해를 거듭하며 지역이 가진 자원을 세밀하게 살펴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 100여 곳 이상의 출판사가 참여하는 서울의 대표축제로,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성장해 왔다.

2014년 말 도서정가제가 개정되었다. 우리는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출판사나 외부기획자의 문화예술프로그램 위주로 기획되는 네트워크형 축제에서 내부기획이 강화된 콘텐츠형 축제로 전환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북페스티벌처럼 문학축제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2016년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시작으로 한‧영 상호교류의 해, 한‧덴마크 상호교류의 해 등의 사업을 통해 국제문학교류를 이어 오다가, 지난해에는 테드 창, 피에르 르메트르, 이르사 데일리워드 등 해외의 유명한 작가들을 온라인으로 초청해 국제문학축제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또 2015년부터 ‘상상만발책그림전’이라는 그림책 더미북 공모전을 통해 그림책 작가를 발굴해 지금까지 30여 권의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우리는 축제의 콘텐츠를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두 가지 큰 축은 실내외에서 이루어지는 문화프로그램과 거리도서전이다. 그중 거리도서전에 참여하는 출판사의 수는 도서정가제 이후 계속 줄고 있어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 일환으로 1인출판사를 지원하는 릴레이강연회와 1인출판사를 위한 부스 등을 통해 작은 출판사들과 협력하고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에 부스를 제공했다. 서울독립출판축제를 서울와우북페스티벌 안에서 개최하게 하는 한편, 잔다리페스타, 인디음악페스티벌 등의 축제와 협력하여 장소를 공유하며, 공동 홍보와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지역정체성을 지키며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그 결과 거리도서전의 부스는 몇 년간 조금 줄었고 휴게공간이 늘어 오히려 쾌적해졌다.

2018년 10월에 열린 서울와우북페스티벌 한복판을 태풍이 관통하며 많은 출판사가 피해를 보았다. 출판사마다 일일이 찾아가 사과하고 보상했으나, 그해를 기점으로 많은 출판사가 거리도서전 참여를 포기했다. 15년간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상징이었던 홍대 앞 주차장 거리를 가득 메운 텐트 안 책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유효기간이 다한 것이다. 2019년 출판사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자 서울독립출판축제, 1인출판사 부스 외에 야외 전시, 야외 프로그램 공간 등을 과거의 몽골텐트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꾸며 분위기를 바꾸려 노력했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 와서 책을 사는 즐거움을 누리던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커다란 한 축인 거리도서전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야외행사를 할 수 없었기에, 다른 축제들과 마찬가지로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자연스럽게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어찌 보면 코로나19가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의 방향을 바꿀 시간을 벌어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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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즈음으로 기억한다.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 초청이 확정된 해외작가와 주제를 물어보는 이채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오프라인 행사와 거리도서전은 할 수 없고 앞으로도 불가능하니, 코로나19 이전 15회째 이어 온 홍대 앞 주차장 거리 축제를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는 4월 말에 축제포럼 이후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5월 1일 나는 그의 부고를 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책 축제로 축제의 새로운 원형이 되었던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10월이면 홍대 정문 근처에서 상수역에 이르는 1.6km의 주차장 모든 면을 사용하여 축제공간이 되었다. 긴 주차장을 따라 다양한 책이 가득한 100여 곳의 ‘출판사 부스’가 있고, 아이들은 어린이책놀이터에서 북캐스터가 읽어주는 책을 듣고 공연을 보고, 어른들은 곳곳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 책을 읽고 쉬기도 하는 풍경이 매년 이어졌다. 몇 년 전 주차장 거리를 바라보며 이채관 대표가 하던 말을 떠올린다.

“주차장에 차가 사라지고 책으로 가득 채워진 자리에서 가을하늘을 즐기는 게 당연한 일이 되는 것. 이것이 축제가 지역의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의 시작이다.”


이제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는 남은 우리의 일이 되었다. 올해 열릴 17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은 독자 중심의 축제, 콘텐츠형 축제, 국제문학축제로 전환하는 실험의 장이 될 것이다. 우리 몫으로 오롯이 남겨진 책 축제를 새로운 형식으로 계속해 볼 생각이다.